투자 이야기/주식투자 이야기

파월과 폴 볼커, 그리고 아서 번즈

개똥 철학자 2023. 1. 12. 00:48
반응형

 

파월은 볼커가 되고 싶은 게 아니다. 아서 번즈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연준의 파월의장이 폴 볼커 전 연준의장을 언급하자 시장은 즉시 반응했다. 폴 볼커는 누구인가?

 

폴 볼커 연준 전 의장

 

폴 볼커는 인플레이션 파이터의 대명사다. 그는 연준의장으로 임명된 후 준금리를 20% 가까이

올려버린 사람이다. 스태그플레이션과 석유파동으로 미국 경제는 2차대전 이후 최악의 침체를

맞이하고 있었다. 볼커는 높은 물가를 잡기위해 경기를 죽이는 선택을 한다. 70년대의

긴 침체기를 겪은 미국은 살인적인 금리 인상으로 더 큰 침체를 맞이하게 된다.

볼커를 임명한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했고 미국 중소기업의 40%가 도산했고

실업률은 10%가 넘어섰다. 노사가 합동해서 시위를 벌일 정도였고 미국 농민들은

트랙터를 몰고 시위했다. 볼커는 늘 살해 위협에 시달렸지만 고금리 정책을 고수했다.

물론 모두가 만족할 정책은 아니었지만 장기 침체에 빠져 일본에게 경제대국 자리를 넘겨줄 뻔한

미국을 살린 것으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볼커는 어째서 미국 국민과 기업을 고통에 빠뜨린 고금리 정책을 사용했을까? 케인즈 학파와

대립하는 밀턴 프리드먼을 추종해서였을까? 자세한 내용은 볼커 이전 연준의장을 살펴봐야 한다.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연준 전 의장

 

아서 번즈 연준 전 의장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과 아서 번즈.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은 역대 연준의장 중에서 가장 긴 재임기간을 가지고 있다.

 

19514월부터 19702월까지 19년간 재임했다. 그는 4명의 대통령을 만났는데 그를 임명한

트루먼부터, 아이젠하워, 케네디, 그리고 린든 베인스 존슨의 임기를 함께했다. 하지만 마틴의장이

유명한 건 연준의 독립성을 끝까지 지켜냈다는데 있다. 그를 임명한 트루먼은 완화적인 정책을

원했지만 마틴은 응하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 문제로 금리 인하를 요구하던 린든 베인스 존슨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인하하지 않고 연준의 독립성을 지켜냈다.

 

하지만 후임 의장인 아서 번즈는 그와 달랐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대통령의 인기를 위해 정책을 시행했다.

 

1970년대 미국의 금리변화

 

아서 번즈는 의장으로 취임하고 금리를 인하했다. 닉슨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개입을 했다.

연준의 독립을 네 명의 대통령에게서 지켜낸 마틴의장과는 달랐다. 미국의 통화량은 급증했다.

 

소비자 물가지수

 

닉슨 전 미국 대통령

1971년미국의 물가는 치솟았고 닉슨 대통령은 달러와 금 사이의 태환 하는 제도인 브레튼 우즈

체제를 포기했다. 금본위제의 종료였고 인플레이션 시대의 시작이었다. 이를 닉슨쇼크라 부른다.

미국의 물가는 빠르게 상승 했다,.

 

 

19731차 석유파동의 영향과 닉슨정부의 과도한 부양책은 초인플레이션을 만들었다.

 

아서 번즈는 그 책임을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돌렸다. 통화정책과 관련 없는 인플레이션으로

치부했고 연준은 유가와 에너지 관련 상품은 소비자 물가지수에서 제외했다. 거시적인 측면에서

바라봐야 하는 소비자 물가지수에서 단기간 변동성이 큰 에너지를 뺀 것이다. 설득력은 있었지만

통화정책의 문제를 감추려는 의도였을 뿐이었다. 소비자 물가지수에 11%를 차지하던 에너지는

물가 지수에서 빠지게 됐다.

 

72년 엘니뇨 현상으로 페루산 멸치가 떼죽음을 당하자 식음료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다. 아서 번즈는

이상기후로 비료와 공급의 문제라며 물가지수에 25%를 차지하는 식음료마저 제외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 지표는 현재 근원 인플레이션이라 부르는 지표가 됐다.  하지만 결국 근원 물가지수

역시 상승하자 연준은 통화정책 실수를 인정해야 했다.

 

근원 물가지수

 

 

하지만 연준의 실수는 끝나지 않았다.

 

197489일 미국 정치사 최대 스캔들인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이 사퇴한다.

1974년 금리를 올렸던 연준은 물가가 조금 잡히는 모습을 보이자 다시 금리를 인하했다.

파월이 물가 하락에도 금리를 인하하지 않겠다고 말한 배경이 바로 이것이다.

 

 

연준은 74년 이후 다시 금리를 인하했고 제대로 잡히지 않았던 물가는 다시한번 치솟기 시작했다.

경기는 침체되고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시작된 것이다. 스티키한 물가는 어설픈 금리인상에

잡히지 않았다. 결국 어설픈 통화정책은 더욱 강력한 물가인상을 불러왔고 70년대 내내 시장은 침체됐다.

 

베트남 전쟁과 두차례 석유파동, 닉슨 정부의 과도한 부양책과 금본위체 폐지, 연준의 통화정책 실수 등이

불러온 70년 스태그플레이션은 폴 볼커가 등장하고 수많은 희생을 치룬 뒤에 진화됐다.

파월은 폴 볼커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서 번즈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역대 최악의 연준의장이라 불리는 아서 번즈의 불명예를 얻고 싶지 않은 것이다.

 

 

트럼프 정부시절 임명된 파월은 2015년부터 시작된 미국 금리인상이 미중 무역전쟁과 맞물려

트럼프 정부의 압박에 못 이겨 금리인하를 결정했던 기억이 있다.

 

 

이후 파월은 연준의 정치와 독립을 확보해야 한다고 늘 말해왔다

 

.

팬데믹으로 역대급 부양책을 실시했던 연준은 그 어느때보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긴축을

실행하고 있다. 물가는 정점을 찍고 내려오고 있다. 과도한 금리 인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경기가 좋지 않다면 연준의 통화정책이 바뀔 것이라 시장은 기대하고 있다.

 

 

파월은 물가가 살아있는 한 금리를 내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파월이 말하는 2%대에 들어서기

전까지 지루한 싸움을 할 것이다. 그는 아서 번즈가 되지 않겠다고 말했다. 어쩌면 시장은 40년만에

찾아온 인플레이션을 과소평가하고 있지는 않을까? 시장은 파월이 폴 볼커 전 의장처럼

하지 못할 것이라 말하는데 그렇다면 그가 아서 번즈 전의장처럼 행동할 것이라 믿는 걸까?

 

월가와 여의도에는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전문가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들은 08년 서브프라임

이후 이어진 저금리시대에 바이어딥 관성에 젖어 있는 걸지도 모른다. 바이더딥의 근거는

연준의 통화정책이었다. 주가가 떨어지면 뒤에서 묵묵히 부양해주던 연준은 이제는 없을지도 모른다.

파월은 볼커가 되고 싶은 게 아니다. 아서 번즈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역대 최악의 연준의장이라 불리는 아서 번즈의 불명예를 얻고 싶지 않은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