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7년 6월 경기침체
1830년대 미국 증시는 투기의 광풍이었다. 마진론이 처음 도입되면서 광기가 붙으면 더 무섭게 증시가 올랐고, 떨어지기 시작하면 마진콜로 가파르게 떨어졌다. 주가에 10%만 있어도 대출이 가능했고 증권사 브로커가 직접 대출을 알선해줄 정도로 마진론은 성행했다. 유동성이 넘치자 주식시장은 거대한 투기판으로 변했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1935년부터 주가는 급락했고 고점대비-70퍼센트 이상 떨어졌다. 그리고 1940년대에는 선물옵션 광풍이 불었다.
“프랑스 귀족 출신 정치학자인 알렉시스 토크빌은 다음과 같은 말로 미국의 물질주의를 묘사했다. 부자들의 생활에 부러움과 질투어린 눈길을 던지는 미국인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또 비록 현재의 삶이 곤궁할지라도 장밋빛 미래를 꿈꾸지 않는 사람도 보지 못했다. 부자가 되는 것은 이들의 최고 목표이며, 미국을 규정하는 요소이다.”
-알렉시스 토크빌-
1846년~1848년 미국은 멕시코와 전쟁을 벌였다. 이후 미국의 경제는 호황에 접어든다. 그 배경에는 “골드러시”가 있다.
캘리포니아 콜로마의 슈터밀에서 제임스W. 마셜이 1848년 1월24일 금을 발견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곳은 겨우 800여명이 모여 사는 작은 해변 마을이었다.
하지만 금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30만명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부자들도 있었지만 재산이 없는 사람들도 이곳으로 몰려왔다. 그들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금광에 투자를 했다.
1845년 감자가 썩는 동고병이 아일랜드를 대기근 상태로 만들었다. 이때 수많은 아일랜드 사람들은 대서양을 통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1848년 유럽은 혁명의 물결이 불었다. 정치적인 문제로 많은 유럽인들이 미국으로 건너왔다. 미국으로의 이민은 골드러시를 맞아 더욱 가파르게 늘어갔다.
캘리포니아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금이 생산됐다. 1848년 ~ 1855년 까지 채굴은 계속됐다.
유럽에서는 이민자뿐 아니라 투자금도 미국으로 많이 유입됐다.
특히 영국의 은행들이 미국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금광과 미국을 가로지르는 철도산업은 호황을 맞이했고 막대한 유동성 덕에 1948년대비 주식은 60%가까이 치솟았다. 골드러시로 막대한 부를 거머쥔 사람들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수익을 거두지 못했다.
위대한 펀드 매니저였던 피터린치는 골드러시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During the Gold Rush, most would-be miners lost money, but people who sold them picks, shovels, tents and blue-jeans (Levi Strauss) made a nice profit.” “골드러시때 대부분의 광부들은 손해를 보았지만, 곡괭이와 삽 그리고 텐트와 청바지를 판 사람들은 좋은 수익을 올렸다.” -피터린치-
골드러시는 투기심리를 일깨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소수만이 돈을 벌게 된다. 우리 뒤엔 손해를 본 대중들의 분노가 이글거리고 있다. -빌 게이츠-
하지만 1853년 유럽에서는 오스만제국, 프랑스제2제국, 대영제국, 사르데냐왕국의 동맹과 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했다. 유럽은 러시아 곡물 수출에 제재했다. 그러자 미국의 곡물 값은 치솟았다.
1953년에 시작된 전쟁은 1956년 양측에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러시아의 패배로 끝났다. 러시아 곡물 수출 제한이 풀리자 미국의 곡물 값은 빠르게 떨어졌다. 금 생산량도 줄어들고 유럽 투자금도 줄어들자 버블은 서서히 꺼져가기 시작했다.
이 당시 많은 대출을 받아 철도회사에 투자한 사례가 많았다. 이들은 철도회사 주식이 폭락하기 시작하자 큰 손해를 봤고 마진콜을 당했다. 돈을 갚지 못하면 파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중 하나가 오하이오 생명보험 신탁회사였다.
1857년 8월 24일 직원의 횡령으로 파산한 오하이오 생명보험회사가 글로벌 대공황의 시발점이 되었다.
오하이오 생명보험 신탁회사의 자본금은 200만달러 였지만 500만 달러치의 철도회사 채권을 매수했었다.
사무엘 모스의 전신 개발로 이 소식은 이전의 금융위기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미국과 유럽 전역에 소식이 퍼져 나갔다. 패닉이 전 미국과 유럽에 퍼지자 은행과 투자자들은 철도회사 주식을 내던지기 시작했다. 주식시장은 30% 넘게 급락했다.
유럽은 1820년대부터 소 빙하기를 겪고 있었다. 이는 대기근을 불러왔고 많은 유럽 사람들이 고통에 방치됐다. 나폴레옹 전쟁은 전 유럽을 파탄으로 몰아갔고 1948년 여러 혁명과 아일랜드 대기근, 그리고 크림전쟁까지 유럽 역시 힘겨운 상태였다.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갔고 이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글로벌 경제위기의 시작이었다.
오하이오 생명 신탁회사의 파산 후 한 달 뒤인 1857년 필라델피아 펜실베니아 은행이 인출을 금지했다. 뉴욕의 63개 은행중 62개 지점이 폐점됐고 영국의 데니스턴 은행, 웨스턴 스코틀랜드 은행역시 파산했다. 모두 철도회사에 지나치게 투자했던 은행들이다.
뱅크런의 두려움에 미국은 1867년 10월 한 달간 은행 휴업을 선언했다.
설상가상으로 24톤의 금괴를 싣고 뉴욕으로 향하던 센트럴 아메리카호가 태풍을 만나 카리브해에 가라앉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미국의 증시는 고점 대비 54% 이상 대폭락 했다.
유럽의 복합적인 문제와, 미국의 골드러시, 그리고 철도회사 버블, 크림전쟁, 뱅크런, 전신의 발달로 인한 빠른 뉴스 전파 등등으로 1857년 경제위기는 첫 글로벌 경제위기로 남게 됐다. 이제 경제위기는 한 나라의 위기가 아닌 전 세계에 영향력을 끼친다.
골드러시 기간이 끝나가면서 고점을 찍었던 주가는 경기침체에 들어서고 최저점을 기록하는 데까지 5년의 시간이 걸렸으면 -54% 하락했다. 이후 상승장이 이어져 5.9년간 180% 상승했다.
1857년 6월부터 1861년 6월까지가 경기침체 기간이며 총 1.6개월이다. 침체 기간 주가는 -26% 하락했다.
골드러시 절정이던 시기 주가에서 침체가 시작되던 시점까지 2년 4개월간 주가는 -34% 하락했다.
골드러시 절정이던 시기 주가에서 침체가 종료되던 시점까지 3년 10개월간 주가는 -52% 하락했다.
골드러시 절정이던 시기 주가에서 침체기간 최저가는 -54% 하락했다.
만약 침체 기간 최저점에서 만약 매수를 하고 최고점에서 팔 수 있었다면? 232%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물론 바닥에서 매수해 천장에서 파는 건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오는 용을 잡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럼 조금 더 가능성이 있는 확률로 접근해 보자.
https://hedonia.tistory.com/36
경기침체의 정의는 위 글을 확인해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경기침체 공식 선언은 7~15개월의 시차가 있다.
경기침체가 선언되는 시점은 침체가 이미 7~15개월 진행됐거나 이미 종료된 후라는 말이다.
그럼 침체시점에서 7개월 그리고 15개월후 주가는 어떻게 변했을까?
우연히도 침체 선언 시작된 시점 7개월이 지난 후가 침체기간 최저점과 일치한다. 그러니 7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침체가 공식화됐고 그때 주식을 매수했더라도 230%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고점에 판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지수는 언제나 우상향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다음은 침체 후 15개월이 지난 뒤 매수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전 고점까지 164%의 상승을 보였다. 물론 바닥에서 매수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훌륭한 수익율이다.
cowles commission 지수를 참고해서 차트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1918년까지는 cowles commission 지수를 참고해 만들었습니다. 차트는 월봉입니다. 이를 감안하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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